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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브리핑 불편한진실] 누가 내돈을 훔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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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돈

[뉴스백/박성훈기자 ace@]

그날 밤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습니다. ‘마음 쓰지 말자. 한 두번도 아닌데…’ 생각을 다잡으려 노력을 했지만 금방 새벽이 왔습니다. 아마도 가슴 깊은 곳 한편에서 그간 막연하게 생각했던 ‘사표’가 떠올랐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다른 신문사에 갈 수 있을까? 그곳에서는 정상적인 기사만 쓸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결론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공포가 몰려왔습니다. 다른 직종과 달리 기자는 사업을 했을 때 실패할 가능성이 가장 큰 ‘순진하기 그지 없는’ 족속이기 때문입니다. 기자는 기사를 쓰는 것 외에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들지 않는, 말 그대로 중간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뿐인 사람들입니다.

 

이는 곧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뜻입니다. 맛집을 취재했을 뿐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도, 친절하게 손님들을 응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아시아 홈런왕 이승엽과 수차례 대화를 했지만 스스로는 홈런은커녕 내야안타 치기도 버겁습니다. ‘나도 기자에 불과한데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도 기자로 살고 있는 분들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더 이상 신문사라는 조직에서 버틸 자신이 없었습니다. 기자로 버틸 수 있는 인내심도 바닥이 났습니다. 독자가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해 글을 쓴다는 게 더 두려워졌습니다.

 

기자로 살아온 14년이 후회된 게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출근할 무렵 어떤 생각을 하자 피곤함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습니다.

‘1년 동안 취미삼아 해왔던 팟캐스트를 전업으로 하면 어떨까?’

맞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보고 계신 이 책, 그리고 책보다 먼저 청취해주셨던 경제 팟캐스트가 바로 이 찰나의 생각에서 비롯된 겁니다.

 

‘누가 내 지갑을 훔쳐갔을까’와 ‘경제브리핑 불편한진실’은 이런 사유로 결국 탄생했습니다. ‘‘누가 내 지갑을 훔쳐갔을까’의 토대가 된 경제브리핑 불편한진실은 2015년 4월에 첫방송을 한 이래 현재까지 2년 6개월을 이어왔습니다. 이 책이 나온 7월 초까지 약 640회를 방송했네요. 방송의 퀄리티를 떠나서 양적인 측면에서는 잘난 척을 살짝 해도 될 듯 합니다.

 

2년6개월 방송하면서 다양한 불편한진실을 까발리고 강조하고 반복했습니다. 본문에서 마주하실 내용들은 그간 방송을 하면서 특히 많은 애청자들께서 분노하고 슬퍼하고 치를 떤 대목들입니다.

국민을 특히 소비자를 불편하게 하는 건 결국 돈을 알게 모르게 더 쓰게 하는 것,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쓰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불편한진실은 곧 도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둑은 큰도둑과 좀도둑으로 나눌 수 있겠죠? 1부에서는 큰도둑을 2부에서는 좀도둑을 다루고 두 도둑을 잡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제안합니다.

그럼 제가 밤잠을 이루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박차장, 이재용 좀 조져라!”

 

2015년 1월 초순이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종합일간지에 새로운 편집국장이 부임했는데 저에게 내린 첫 지시가 바로 위와 같았습니다. 일단 간단한 문장이지만 언론사와 관계없는 분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먼저 박차장은 저입니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박성훈이고 당시 제가 산업부 취재기자 중에서 부장 다음으로 경력이 많은 차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재용은 삼성그룹의 오너3세인 이재용 부회장입니다. 마지막으로 ‘조져라’라는 말은 삼성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를 쓰라는 일종의 은어입니다.

 

새해가 밝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신임 국장은 그런 지시를 내렸습니다. 저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그 전에 삼성그룹, 그것도 이재용 부회장을 ‘조지는’ 행위가 어떤 의미가 있는 지를 설명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그보다 먼저 왜 대단할 것 없는 종합일간지가 지난 5월 기준 국내 재벌 주식자산 3위(약 7조원) 부자에 빛나는 이재용 부회장을 ‘조져야만 했는지’를 알아야 하겠네요.

 

종합일간지 즉 매일 나오는 신문은 사실상 광고 수입으로 운영됩니다. 요즘처럼 모바일과 인터넷으로 정보를 소비하는 세상에서 신문의 역할은 갈수록 줄어들고 급기야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신문에 광고를 해왔던 기업 입장에서는 광고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돈을 내고 광고를 해봤자 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죠.

 

이때 종합일간지에서 무리수를 둡니다. 물론 모든 일간지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경영이 어려울수록, 앞이 캄캄하다고 느끼는 정도가 심할수록 무리수를 둘 가능성이 큽니다. 이 무리수가 뭘까요? 바로 광고주를 향한 사실상의 협박입니다. ‘신문과 기자가 어떻게 광고주를 협박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실 수 있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협박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겁을 주며 압력을 가해 남에게 억지로 어떤 일을 하도록 함.’ 즉 신문사에서는 기업에 해가 될 수 있는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리거나 이미 기사를 쓴 다음에 기사를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조건으로 광고비를 받습니다. 협박 맞죠?

 

그럼 ‘이재용 조지기’가 갖는 의미는 무얼까요? 삼성그룹에는 수많은 계열사가 있고 각 계열사에서 내놓는 제품과 서비스가 엄청 많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기업의 부정적 기사를 쓴다고 하면 제품이나 서비스를 물고 늘어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S8’에서 하자가 발생했다든지, 제일모직에서 만든 빈폴이라는 의류 브랜드의 특정 상품에서 피부병을 유발하는 화학물질이 대량으로 발견됐다는든지 말이죠.

 

그런데 왜 제품이 아닌 이재용 부회장을 겨냥할까요? 압력을 가한 다음 억지로 어떤 일을 하도록 하는 매커니즘에서 오너 일가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일 만큼 확실한 게 없기 때문입니다. 가상의 두 가지 기사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조만간 출시될 ‘갤럭시노트8’이 전작에 이어 자체 하자로 폭발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특종 기사. 그리고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병원에서 은밀하게 진료를 받았다는 내용을 최초로 보도한 기사.

 

독자 여러분 대부분은 아마도 갤노트8이 1년 만에 다시 폭발한다는 기사에 주목하시겠죠. 그런데 삼성전자나 삼성그룹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병원 진료 기사에 더 안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알고 봤더니 그의 병명이 단순한 복통, 치통이었을 지라도 말이죠? 신기하지 않습니까?

 

삼성전자 제품에 문제가 생긴 게 사실이면 이를 회수하고 다시 디자인해서 더 나은 물건을 만들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비용이 지출되겠지만 삼성 자체에 주는 데미지는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반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나가면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당장 삼성그룹의 콘트롤타워(최근 해체된 미래전략실)가 매우 당황합니다. 사실 큰 의미가 없거나 대세에 전혀 지장이 없는 기사일지라도 말이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사를 본 이재용이 그들보다 더 당황하기 때문이죠. 자신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기사를 보고 기분이 좋을 리 없죠. 게다가 아무도 모를 줄 알았던 일이 신문이나 온라인 기사에 나와서 온 세상 사람들이 카톡으로, 페이스북으로 공유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할 겁니다.

 

 당연히 이재용은 삼성의 2인자, 3인자를 달달 볶을 것이고 콘트롤타워의 아재들은 이같은 기사가 나올때까지 구경만 한, 아니 막지 못한 그룹 홍보 담당자를 매우 힘들게 하겠죠? 어차피 자신들의 승진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콘트롤타워의 꼰대들이기 때문에 거역은 고사하고 변명조차 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런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해온 삼성의 홍보담당자들은 자신이 편하기 위해서라도 기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혹시 이재용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면 사전에 기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광고를 집행하는 방식으로 공생관계를 구축해 온 것이죠. 자신들의 개인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닌데다 가끔은 언론사에서 이재용을 ‘빨아주는’ 기사도 서비스하기 때문에 크게 손해 볼 일은 없습니다.

 

‘빨아준다’는 은어는 긍정적인 기사를 쓴다는 뜻입니다. 삼성전자의 실적이 잘 나오면 ‘이재용이 똑똑해서’ ‘이재용이 경영을 시작했기 때문에’ 따위의 전혀 공감되지 않는 핑계를 언급하며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것이죠. 심지어 이재용, 홍라희, 이부진, 이서현 등 오너가의 이름이 제목에 나오면 기사 클릭수가 엄청 올라가기 때문에 기자나 신문사 입장에서는 손해 볼 일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다녔던 신문사는 삼성의 ‘성은’을 많이 얻지 못했고 이를 불쾌하게 여긴 신임 국장이 저를 앞세워 도발을 한 셈이죠.

 

자, 그럼 저의 최종 선택은 무엇일까요? 안타깝게도 저는 조직의 요구에 화답했습니다. 기자 이전에 월급쟁이라는 사실을 애써 부각시켰습니다. 저와 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합리화했습니다. ‘정신 승리’에만 도취해서 죄송합니다. 독자 여러분을 무척 실망시킨 듯 합니다.

 

용기를 좀 더 내서 이후의 상황을 전할까 합니다. 전전긍긍하며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기사를 완성해서 출고했습니다. 제 기사를 본 신임 국장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제법 쓰네!” 단 한마디만 남기고 신문 1면에 올렸습니다. 다행히 기사가 나간 다음날 삼성그룹 측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신임국장이 부임했다는 사실, 자신들을 길들이기 위해 맛보기용으로 이런 기사를 제작했다는 사실 등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문제는 시대착오적인 이 국장이 일주일만에 또 같은 요구를 해온 것이었습니다. “박차장, 이재용 한 번 더 가자!”

‘나는 집에 가야 되는데 뭘 더 가?’ 혈압이 오르고 뱃속에서는 열불이 났습니다. 동시에 두 아이와 아내의 얼굴도 떠올랐습니다. 일단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래서 잠을 못 잤습니다 ㅠㅠ.

‘누가 내 돈을 훔쳤을까’는 빈티지하우스에서 펴냈습니다. 이 출판사도 저희처럼 아재 두명이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고 있습니다. 즉 ‘누가 내 돈을 훔쳤을까’를 구매하시는 건 출판 생태계를 튼튼하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공동저자인 저희는 인세의 10%를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합니다. 이곳에서는 최근 ‘어쩌다 슈퍼맨’이라는 캠페인을 진행 중인데 공익 제보자들에게 도움을 드리는 방식입니다. ‘경제브리핑 불편한진실’의 다양한 소스는 결국 공익 제보자들의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죠. 

경불진의 두 아재, 출판계의 두 아재, 산업계의 공익 제보자들까지… ‘누가 내돈을 훔쳤을까’를 사시면 일타삼피로 좋은 일을 하시는 겁니다. ‘대놓고 구걸’ 기사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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